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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인명사전  작성일  2010-04-16
 제목  최원초(1905.11.27~1950. 9.23) 목사
 주제어  [한국인 목사] [대한민국] [장로교] [목사] [순교자] [한국전쟁]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최원초는 1905년 11월 27일 평안북도 삭주군 외서면 대관리에서 최대성의 2남으로 태어났다. 농업학교를 거쳐 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하였고 안주노회 기탄교회 목사로 시무하였다. 해방 후 1949년 신안주교회 목사로 있으면서 기독교도연맹 가입을 거절하여 1950년 9월 23일 공산당에게 납치되었다.

 

보통학교 졸업.
연변농업학교를 졸업.
1942년 평양신학교 졸업(37회)
전매청 취직 판매소장
사립학교 교사
벽동교회 조사. 기탄교회 부임. 신앙주교회

최원호는 보통학교를 졸업 후 가족을 따라 만주로 건너가 연변농업학교를 마친 후 전매청에 근무하다가 판매소장에 취임하게 되었다. 사색적이고 학구적인 그는 전매청 근무가 마땅치 않던 중 기독교전도자를 만나 예수를 믿게 되고 남들이 그렇게 부러워하는 전매청 근무가 혐오스렙게 느꼈다.


사립학교 교사가 되었으나 생활비 문제로 갈등을 겪다가 교사직을 포기하고 평양신학교에 입학했으나 1938년 신사참배 결의에 실망 간음한 교회를 떠나 노동자들 속으로 들어갔다가 폐교되었던 신학교가 다시 개원하자 다시 등록하여 1942년 37회로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안주노회에서 안수받고 기탄교회로 부임했다.


평소 기도와 독경을 강조 언제 환란을 받아 죽을지 모를 때를 대비하자고 지론을 주장했다. 요하계시록은 1만독, 빌립보서는 3천독을 해서 부흥사경회시에 계시록을 20분만에 외우곤 해서 감동을 주었다. 또한 히브리어 희랍어 를 독학으로 공부해서 원어에 막힘이 없었고 영어로 원전 강해를 할 실력이었다.


1945년 해방이 되고 공산당이 정권을 장악한 상황에서 공산당에 전도하는 자세를 취하다가 수차레 피를 흘렸다 특히 기독교연맹가입을 반대함은 물론 어용기관임을 폭로했다.그는 언제 닥칠지 모르는 최후를 위해 솜바지 두루마기를 입고 교회 강단에서 철야하기를 쉬지 않았다.
1944년 기탄교회에서 신안주교회름 목회하던 그는 6.25사변이 터지던 1950년 9월 23일 오후 교회 강단에서 공산당에게 연행 당해 소식을 모른다. 그날도 최목사는 "공산당 유물주의는 적 그리스도로서 세계를 지배할 수 없는 사상임"을 역설하고 공산당에 청청히 끌려갔다. 

최원초목사의 일화

"예수 믿으시오. 예수 믿고 천당가시오." 최원초 목사는 군복을 걸친 내무서원에게 정중하게 전도를 했다. 그러자 그는 흘깃 최목사를 올려다 보았다. "저한테 지금 전도하고 계시는겁니까?" "물론이지요 공산당원이라고 인간 대열에서 낙오될 수 있나요? 사람은 예수 믿어야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젊은 공산당원은 정색을 하고 목사를 노려보았다. "공산당원은 무신론자라는 것을 잘 알텐데 정말 저에게 전도하십니까?" 고개까지 개우뚱 거리는 것을 보니 사뭇 이상하다는 표정이었다. 공산당에게도 예수 믿으라고 전도하던 목사 그가 최원초 목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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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결고리 : 대한민국, 한국전쟁, 장로교, 목사, 순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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