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영토)의 중산층 유대인 가정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현실적이고 권위적이며 사업욕이 강한 아버지는 내향적이고 섬세한 감정의 소유자인 아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자칭 동화된 유대인이었지만 유대인 공동체의 예배와 의례를 마지못해 지킬 뿐이었으므로 카프카는 언어면에서나 문화면에서나 독일인이었다. 소심하고 죄의식을 지닌 온순한 소년이었던 그는 초등학교에서도 학구적인 엘리트를 양성하는 규율이 엄격한 고등학교인 알트슈테터 슈타츠 김나지움에서도 모범생이었다. 교사들은 그를 높이 평가하고 좋아했다. 그렇지만 그의 내면에서는 이 권위주의적인 제도와 기계적인 암기식 학습, 고전어들을 강조하면서 인문과학을 비인간화시키는 교과과정에 대한 반란이 일고 있었다. 카프카가 기성사회에 대해 명백한 적대감을 표명한 것은 청년이 되어 자신을 사회주의자·무신론자라고 선언했을 때였다.
이런 아버지의 형상은 카프카의 존재뿐만 아니라 작품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 카프카는 프라하대학교에서 별 흥미 없이 법학을 공부했는데, 이때(1902년) 막스 브로트를 알게 되었다. 카프카의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된 브로트는 훗날 카프카의 글을 장려하고 구제하고 해석했을 뿐만 아니라 가장 영향력있는 전기작가가 되었다.
1906년 박사학위를 받고 1907년 한 보험회사에 근무하기 시작했으나 긴 근무 시간으로 글을 쓸 수 없었기 때문에 1908년 프라하의 보헤미아 왕국 노동자 상해보험회사라는 준국가기관으로 직장을 옮겼다. 이곳의 근무 시간은 2시까지였기 때문에 카프카는 일을 마치고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작품에는 절망적인 시대와 인간 존재의 불안, 사회구조의 불가해성 등이 매우 상징적으로 나타나 있어서, 풍부한 해석을 야기시켰다.
1917년 폐병이라는 진단을 받고 요양원에 자주 들렸다. 1923년 카프카는 아버지의 가부장적 억압으로부터 벗어나 글쓰기에 전념하기 위해 베를린으로 갔다. 여기서 사회주의자인 젊은 유대 여성 도라 디만트와의 우정으로 삶의 용기를 얻었지만 1924년 겨울에 건강이 악화되어 짧은 기간동안 베를린에 체류했다. 도라 디만트와 함께 프라하에 잠시 머물렀다가 빈 근처의 한 요양원에서 사망했다.
저작
장편
아메리카 (Amerika 혹은 실종자 Der Verschollene)
소송 (Der Prozess)
성 (Das Schloß)
단편
판결 (Das Urteil) http://www.gutenberg.org/etext/7849
지방에서의 결혼예식 (Hochzeitvorbereitungen auf dem Lande)
관찰 (Betrachtung)
변신 (Die Verwandlung) http://www.gutenberg.org/etext/5200
유형지에서 (In der Strafkolonie)
단식 예술가 (Der Hungerkünst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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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깥고리 :
카프카 관련 [독일어] 본 대학의 카프카 홈페이지 http://www.kafka.uni-bonn.de/ 피셔 출판사의 카프카 홈페이지 http://www.franzkafka.de/ Kafkaesk - 카프카와 프라하 http://www.kafkaesk.de/ Franz Kafka - 위키피디아 http://de.wikipedia.org/wiki/Kafka
카프카 관련 [영어] The Kafka Project http://www.kafka.org/ Oxford Kafka Research Center http://www.kafka-research.ox.ac.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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