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1월 23일 북한 초계정이 원산 앞바다 북한 해안에서 40km 떨어진 동해 공해상에서 미국해군 정보선 푸에블로호에 접근해 정지할 것을 요구했다. 푸에블로호가 이를 거절하자, 미그 전투기 2대의 지원을 받아 푸에블로호를 원산항으로 나포했다. 이 과정에서 장교 6명 사병 75명 민간인 2명 등 모두 83명이 타고 있던 푸에블로호는 1명이 총격을 받아 사망했다.
미국이 이 지역에 군사력을 집중시키자 한반도는 6·25전쟁 이후 가장 심각한 긴장상태에 처했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과 협상을 시도했으며, 사건 발생 후 11개월이 지난 1968년 12월 23일 모두 28차례에 걸친 비밀협상 끝에 승무원 석방 타협안을 이끌어냈다. 결국 미국이 북한이 요구한 영해침범 시인과 사과 요지의 승무원 석방문서에 서명 한 뒤 82명과 유해 1구가 1968년 12월 23일 판문점 통해 돌아왔다.

1968년 1월 동해상에서 나포한 미국 정보함 '푸에블로호'.
1998년 말까지 원산에 있다가 1999년 김정일 위원장의 지시에 의해
'제너럴 셔먼호'의 격침 장소인 현재의 대동강 '충성의 다리' 밑으로 옮겨 왔다고 한다.
이 배를 어떻게 옮겨 놓았는지는 아직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