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4년(연산 10년10월 29일 ) 현재의 강릉시 죽헌동 외가인 오죽헌에서 평산신씨 신명화공의 다섯딸중 둘째 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신명화라는 이름의 선비였고, 어머니는 용인 이씨 집안의 선비인 이사온의 딸이었다. 본관은 평산(平山)이고, 본명은 신인선이다. 호는 사임당(師任堂:思任堂:師妊堂)·시임당(媤妊堂)·임사재(任師齋)이다. 그는 외가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한양에서 내왕하는 아버지보다는 집에 계신 어머니 교육으로 주로 성장했다. 외조부의 교훈과 어머니의 훈도를 받으면서 안견의 화풍을 배우게 되었는데 산수, 포도, 풀벌레 등 여러 가지 그림을 익히는 한편 부모로부터 유교경전을 공부하였는데 기본교육은 물론 그의 학문이 일취월장하여 경사에도 능하게 되었다. 특히 어머니에게서 글도 배우고 여범(女範)을 고루 배워 부덕(婦德)과 교양을 갖춘 현부로 성장하였다.
그는 아버지 명화가 가장 아끼는 딸로 19세에 덕수이씨(德水李氏) 원수(元秀)와 결혼한 후에도 시집에 가지 않고 친정에 머물렀으나 결혼 몇 달 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버렸다. 그래서 친정에서 친정어머니를 계속 모시면서 3년상을 마치고서야 서울로 올라가 시어머니 홍씨에게 신혼례를 드리게 되었다. 이후 그는 시집의 파주 율곡리에 기거하기도 하였고,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백옥포리에서도 여러 해 살았으며 이따금 친정에 가서 홀로 사는 어머니와 같이 지내기도 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38세에 시집살림을 주관하기 위해 아주 서울로 떠나와 수진방에서 10년동안 살다가 1551년 삼천동으로 이사했다. 그런데 그 해 여름 그의 나이 48세에 갑자기 병고를 얻어 세상을 떠났다. .
그는 뛰어난 화가로서 7살 때 세종 시대의 화가 안견(安堅)의 그림을 본따서 그림을 그렸고, 숙종, 송시열 등 여러 지식인들이 그가 그린 그림에 발문을 쓸 정도였다. 서예가이자 시인이기도 한 그는 '어머니가 그리워'(思親)등의 한시(漢詩)를 여러 편 지었다. 현재 5만 원짜리 지폐의 초상으로 선정되었다.
1536년(중종 31년). 33세 이른 봄 밤 꿈에 동해에 이르니 선녀가 바닷속으로부터 살결이 백옥 같은 옥동자하나를 안고 나와 부인의 품에 안겨주는 꿈을 꾸고 아기를 잉태하였다고 한다. 그가 바로 율곡선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