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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팽손(梁彭孫)은 조선 제11대 임금인 중종(中宗, 재위1506-1544)때 문장(文章)과 서화(書畵)로 명성을 얻은 문신이다. 그는 조선 후기의 윤두서(尹斗緖, 1668-1715), 말기의 허련(許鍊, 1809-1892)과 함께 호남의 대표적인 문인화가로 손꼽히는데, 특히 양팽손은 호남 화단의 선구자로 지칭된다.
본관은 제주(濟州)로 1488년 9월 19일 전남 능성현(현 능주) 월곡리에서 양이하(梁以河)의 아들로 출생하여 1545년 8월 18일 학포당에서 타계했다. 그의 사후 3백년 이상 지난 1863년(철종 14년) 혜강(惠康)이란 시호를 받았으니, '부지런하고 사(私)가 없으므로 혜(惠)라 하고 연원(淵源)이 유통(流通)하므로 강(康)이라 한다'는 뜻으로 한평생 일관된 삶의 태도와 성품을 잘 대변한다 하겠다.
조광조(趙光祖) 등과 함께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하고, 1519년 교리(校埋)로 재직 중 기묘사화(己卯士禍)로 삭직되었으나 1537년 김안로(金安老)가 사사(賜死)된 뒤 복관(復官)됨. 글씨를 잘 썼고 이조판서(吏曹判書)에 추증되었으며, 능주(綾州)의 죽수서원(竹樹書院)에 배향됨. 문집에 《학포유집(學圃遺集)》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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